영화가 재미있든 재미없든, 내가 호평을 하든지 악평을 하든지, 장르에 상관없이 지금까지의 통계로 볼 때 4할 이상은 관람하다가 운다. 그것도 <시네마 천국>에서 대사를 미리 읊조리며 엉엉 울던 고약한 아저씨처럼 펑펑 운다. 물론 소리 내면서 울지는 않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 한번 <해리포터 3, 아즈카반의 죄수>는 “익스펙토 패트로눔”을 외치는 사람이 아빠가 아니라는 걸 깨닫기 직전, 즉 아빠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들떠있는 해리를 보며 울기 시작해서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빠져나오면서까지 우는 바람에 오빠를 곤혹스럽게 한 적이 있긴 하다. <월-E>를 보면서도 울었고, <E.T>를 다시 보면서도 울었다.
그렇다. 나는 <크리스마스 캐롤>도 보면서 울었다,를 좀 길게 이야기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영화적으로 작품성이 뛰어나다거나 훌륭했다고 말하기엔 다소 지루한 감이 있다. 여러 가지 시도는 좋았지만 ‘스타일’을 완성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상이 감성의 기폭제가 되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어린이 영화지만 나의 감수성이 폭발한 부분은 ‘스크루지’의 나이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세월을 지낸, 최소 유년·청년 시절을 떠나보낸 이들만이 가진 도화선일테다.
스크루지가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해질녘 모두가 하교 한 뒤 적막한 교실에 남아 쓸쓸히 캐롤을 부를 때 이미 나의 얼굴은 눈물로 뒤범벅 되어있었다.
그곳에 앉아있는 아이가 ‘스크루지’냐고 물어보려던 유진이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 영화보는 내내 나를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유진이는 유진이 답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선 뒤 한참이 지나서야, 왜 울었냐고 물었다. 즉 엄마가 감정을 충분히 정리할 시간을 준 것이다.
「엄마가 엄마를 본 것 같아서. 엄마가 왕따를 당했다는 게 아니라, 누구나 이 나이쯤 되면 아니 너희들처럼 무엇이든 그리고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부서진 후, 스크루지처럼 그 때를 보는 일은 참 슬퍼져. 아직 너희들은 알 수 없을 거야. 아직 알아서도 안되고.」 알 듯 모를 듯 유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옆에서 현유는 이 영화는 자신의 기분을 점점 나빠지게 했다고 투덜댔다.
이렇듯 스크루지에게 나타난 과거의 유령이 사라질 때쯤, 다시 말해 과거의 유령이 스크루지의 기억 속에 침잠한 모든 이들로 모습을 바꿀 때쯤 유령이 스크루지라는 것을 관객은 깨닫게 된다. 현재의 유령은 결국 스크루지가 현재 가지고 있는 번뇌를 끌어안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고, 미래의 유령 역시 자신의 과거와 현재(결국 현재도 과거)가 만들어낸 그림자임을 드러낸다.
영화 <크리스마스 캐롤>은 원작이 그렇듯 온전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호탕하게 웃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던 현재의 유령이 된 스크루지 처럼, ‘나’도 늦지 않았다. 여전히 그리고 기쁘게도 살아서 이렇게 우뚝 서있을 수 있으니까.
큰언니에게 추신) 네이버 검색해보니까, 짐 캐리가 스크루지, 과거/현재/미래의 유령 목소리를 다 한거 맞더라. 콜린 퍼스가 프레드를 게리 올드만은 밥 크라칫/꼬맹이 팀을 했더라. 내일 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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